엘든링 1회차 엔딩 및 중도 포기 소감
PS5 로 100여 시간 플레이하다가 막손으로는 도저히 클리어할 수 없어서 결국 PC판을 구입해 치트플레이를 했습니다. 내돈 내고 즐기는 건데 정확한 컨트롤을 요구하는 게임설계로 엔딩조차 못 보는 건 억울하죠. 문명 황제 난이도 도전이 아니라 이지 난이도 엔딩도 못보는 꼴입니다. 닌텐도 같은 몇몇 게임들에서 난이도와 관계없는 특정한 조작을 써야만 진행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저를 좌절시켜 엔딩을 못보고 게임을 포기하게 만든 기억이 떠올라서 참을 수 없더군요.
PS5로 플레이하지 않은 후반, 특히 눈맵 이후는 치트플이므로 그다지 가치없는 감상임을 미리 적어둡니다.
1. 스토리 ★★★ (공포성 ★★★★★)
(1) 스토리의 친절함 ★
PS5 는 치트 안켜고 진행했기에 공략보고 후반맵 고성능 템을 얻는 것에 치중했는데, 알고보니 이게 퀘스트 플래그를 작살내는 플레이라서 스토리가 난해할 수 밖에 없더군요. PC판은 2회차하는 기분으로 스토리 정주행 공략집을 보고 진행했습니다. 그러니 이전에는 구경도 못한 NPC 가 몇배나 많이 나오고 말도 없이 불쑥 튀어나오던 애들이 왜 움직이는지 전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대사량도 많더군요. 대신 이렇게 플레이하면 추월 업그레이드가 거의 불가능해서 막손 실력으로는 게임 진행이 거의 안됩니다. ㄱㅡ
반대로 말해서 이거 공략집 없으면 스토리 이해 불가능합니다. 제가 중요시하는 싱글플레이 게임으로서의 자기 완결성이 무척 떨어집니다. = 인터넷 같은 외부 정보를 전혀 보지 않고 오프라인으로 게임만 플레이시 유저가 게임에 대해 얼마나 파악할 수 있느냐를 따진다면 어크가 약 90% 라면 이 게임은 30% 도 안 될 정도로 비밀 선택지와 분기가 많은 구식 디자인입니다. 특히, 퀘스트 트리거 중에서 다른 벽과 구분이 안되는 사라지는 비밀벽이라든지 굴러서 비밀바닥 벗겨내기 등 전혀 예상치 못한 분기에 이르러선 제작자를 오지게 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 우울하고 공포스러운 스토리 ★★★★★ (공포도)
작중 세계는 디아블로 뺨치는 꿈도 희망도 없는 지옥입니다. 멀쩡한 인간은 죽어있거나 곧 죽임을 당할 극소수의 NPC 뿐이고, 나머지 인구 대다수는 이미 모조리 학살당하거나 살아있는 시체가 되어 맵을 서성이고 있습니다. 시체의 나라에서 왕이 되어달라고...? 설득력을 갖춰주세요.
전반 분위기만 보고 의외로 밝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만 후반부 맵을 가면 음산하고 긴장감을 주는 BGM 과 함께 온갖 엽기스러운 디자인의 몬스터들이 유저의 의욕을 지속적으로 깎습니다.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 같은 공포게임을 싫어한다면 단연코 처음부터 사지 말아야 합니다.
엔딩 또한 지나치게 간결하고 허무해서 순간 현타가 올 정도입니다. 게임을 하다보면 유저의 뒤통수를 하도 때려서 제작자가 이지메에 일가견이 있는 깡패가 아닌가 하는 의혹도 있던데, 작중 인간들의 드라마도 그에 못지 않게 거짓말로 속이고 서로를 배신하여 죽고 죽이는 소돔과 고모라 같은 세계입니다. 멀티 엔딩 중 이딴 세계따위 다 태워버리는 엔딩도 있는 것이 다행으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우울증 환자가 하면 스트레스가 풀리기는 커녕 병세가 더 심해질 수 있는 안티힐링 게임이니 주의해야 합니다.
2. 그래픽 ★★★★★
기술적으로 최고는 아니지만 아트 컨셉으로는 최고이자 극상입니다. 웅장한 게임 세계관을 유저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모든 필드가 명승지입니다. 스토리는 별거 아니지만 보스전 컷씬 연출 또한 걸출해서 압도 당합니다. 차마 스크린샷으로 유저의 감동을 훼손할 수 없기에 글로만 전달하고 직접 보시는 걸 권장합니다. 포토 모드로 안개를 제거할 수 없는 것이 유일하게 아쉬운 점입니다.
또한, 맵을 돌아다니는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게임은 폴아웃과 스카이림 시리즈 이후로 오래간만입니다. 맵의 모든 부분을 세세하게 갈고 닦아서 중복되는 곳이 거의 없으며 마치 옛날 JRPG 게임을 하듯 구석진 곳을 찾아가면 반드시 보상을 받도록 설계해놔서 유저는 드넓은 필드를 자발적으로 샅샅이 흩고 다니게 됩니다. 반면 쉬운 곳에 있는 보상은 반드시 적이 튀어나와서 매우 정직한(?) 설계죠. 모든 곳이 꽉 차 있고 모든 곳이 아름다운 최고의 맵핑입니다.
참 설명할 게 많은데, 요약하면 이 게임의 최고의 장점이자 3D 어드벤쳐 게임의 교과서라 부를 정도로 오픈월드 맵디자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어크 오리진이나 오디세이가 이 정도만 되었어도 범작에서 명작 반열에 올랐을 겁니다.
3. 게임 플레이
(1) 전투 ★★★★★
지금도 '소울류' 게임의 광풍이 불고 있고 어크 오디세이에서도 소울류 비슷한 감각으로 플레이 가능한 모드가 내장될 정도로 엘든링의 PvE 전투는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액션 게임들의 몇 차원 너머에 있습니다. 엘든링을 위시한 프롬소프트의 게임들은 전부 공포성이 다분해서 이후로는 안 할 생각이지만 다른 어지간한 액션게임을 할 때 이미 날카롭게 벼려진 전투감각을 만족시키지 못할까봐 걱정입니다. 이미 PS5 에서 스파이더맨을 조금 했더니 옛날 배트맨 아캄 식의 대충설렁(?) 전투방식이 굉장히 답답하게 느껴지더군요. 그만큼 자극적이고 짜릿함을 보증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공포 성분을 싹 빼버리고 보다 경쾌하고 유쾌한 분위기의 소울류(?) 게임이 나와줬으면 좋겠네요. 어크 오디세이의 전연령 버전인 이모탈 피닉스 라이징처럼 말이죠.
(2) 밸런스 ★★★★★ (공략본 최적화? ★★★)
엘든링은 기존 다크소울 시리즈와 달리 근접전투 원툴에서 벗어나 마법, 영체 등 다양한 원거리 전투방법이 도입되었습니다. 또한 오픈월드로 고난이도 맵에 돌입해서 고등급 템만 얻는 식으로 템빨 플레이도 가능합니다. 그래서 초보자도 공략만 낀다면 엔딩을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저처럼 막손에 공략 최소화해서 플레이하는 유저에겐 예전 다크소울처럼 지옥입니다. 초중반까지는 무기나 영체 강화로 근근이 버틸 수 있었지만 제작자가 시스템을 전부 활용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하도록 적을 점점 강력하게 세팅하고 위와 같은 서브 시스템을 전혀 활용할 수 없는 1:1 근접 전투에선 여지없이 박살나더군요.
그럴 때 허접초보의 유일한 해결법이 바로 보스의 상성에 맞는 특정 무기를 드는 건데... 공략을 안보면 수십번 죽어나가면서 무기를 바꿔들고 자살공격해야 클리어할 수 있는 겁니다. 누가 소울류 게임은 엉덩이가 무거워야 할 수 있다던데 전 그 이전에 고혈압으로 뒤지겠습니다. 게다가 전 액션겜 잼병이라 무기를 바꿔 든다는 개념조차 생소한지라 공략 보기 전엔 무기를 바꾼다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멀티플레이 평가를 보면 밸런스를 철저하게 맞춘 싱글과 달리 엉망진창이라고 하던데, 전 치트플레이를 하느라 안티치트도 끄고 오프라인모드로 해서 경험해본 적 없기에 잘 모르겠습니다. ※ 치트플레이 한번이라도 하면 세이브파일 체크해서 멀티 밴 당하니 세이브까지 다 지워야 합니다.
(3) 인터페이스 ★★
조작법이 참 불편합니다. 구시대 어크처럼 엄청나게 복잡하고 누를게 많습니다. 익숙해지면 삑사리로 낙사하는 일 없이 원하는 동작을 정확히 할 수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알려줘야 할 것도 안 알려주는 불친절한 튜토리얼 시스템 때문에 잘 모르는 초보는 있는 것도 활용하기 힘듭니다. (전 PS5 100시간 하는 동안 사다리 탈 때 빨리 오르내리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제가 무기를 바꾼다는 발상을 못한 것도 그만큼 조작이 불편해서죠. 몰라도 초반 진행에는 큰 불편함이 없지만 초보와 고수의 격차는 이렇게 시작부터 벌어지고 후반에 벽을 느낄 때 공략을 찾아보다가 그제서야 이런 기능이 있는 걸 알게 되면 이를 가는 겁니다.
4. 음악 ★★★★
'소울류' 공포 액션 게임으로서 최고로 적절한 음산하고 긴장감을 주는 BGM 입니다. 보스전의 웅장함은 이루 말할 필요도 없지만 쫄몹조차 BGM이 바뀌면 긴장 안할 수 없습니다. 초반 맵은 그래도 심하지 않은데, 중후반 맵은 적이 나오지 않을 때의 BGM 조차 심한 긴장감을 주기에 격심한 피로감을 느껴 나중엔 아예 볼륨 1로 줄일 정도입니다.
게임에는 아주 잘 어울리지만 단독 OST로 들으면 그닥이네요.
5. 트로피 난이도 ★★★★★
트로피 헌터가 되겠다면 어지간한 게임은 전부 플레이할 능력이 있다는 뜻이겠습니다만, 잘 모르고 선택한 게임이라도 어찌되었든 간에 끝은 봐야겠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만류해야 할 아주 빡센 트로피입니다. 숨겨져 있는 분기까지 찾아야 구경할 수 있는 보스 클리어 및 모든 수집요소가 있어서 고전적으로 까다로운데, 난이도 조정도 불가능해서 어느정도 액션 감각이 있고 게임을 재미없게 만드는 공략집을 껴야 클리어가 가능하죠. 이 모든 조건을 갖춰도 100 시간 이상 걸리는 건 확정입니다.
6. 컨트롤러 적합도 : 둘 다
지금 아날로그 스틱 위치가 중요합니까? 내 캐릭터가 구르다가 죽게 생겼는데요. 앞으로 구르고 뒤로 구르고 옆으로 구르다... 낙사로 꿱하고 죽는 것이 일상인 소울류 게임에서 패드는 던졌을 때 안 부서지고 얼마나 버티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7. 총평 ★★★★★
2022년 전반기를 뜨겁게 달군 게임답게 명불허전이었습니다. 스팀에서 할인을 거의 안하는데 할인 안해도 긴 플레이 타임과 최고의 게임 경험으로 만족스러운 가치를 제공합니다. 위에서 쓰지 않은 장점을 추가로 늘어놓으면 지금까지 쓴 글의 줄수보다 더 길어지기에 생략합니다.
이 게임에도 불호 요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중후반부는 가야 게임이 자신과 안 맞는 걸 눈치 챌 정도로 매우 정성스럽게 포장해놨습니다.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금자탑이 될만한 수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어서 게임 평론 관점으로는 무조건 해야 하지만, 게임을 순수하게 즐기는 사람의 입장으로 보면 일부지만 구입을 만류하고 싶은 단점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시라면 액션겜치라서 대전격투겜 컴까기 보스조차 클리어 해본 적 없고 게임은 엔딩은 무조건 봐야 제맛이라는 분이라면 엘든링은 쓴 추억만 남기고 중간에 접게 될 겁니다. 그 외에 극히 일부지만 따져볼만한 불호 요소를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 공포물 피폐물 진짜 싫어
- 닌텐도처럼 자유도가 전혀 없고 꽉 막힌 방식으로 진행을 강요당하는 구식 게임 디자인(특히 퀘스트 라인, 전투 밸런스)
- 엔딩을 볼 자신이 없는 액션치이지만 치트로 플레이하는 것은 더 싫다
- 고소공포증이 있다
- 고혈압 고지혈로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주는 게임은 못한다
자신이 불호 사항에 전부 다 해당된다면 명작에서 평작 정도로 내려갈 수는 있습니다만 그래도 이만한 게임은 현재 찾아보기 어려우므로 나중에라도 할인하면 드셔보세요. 저는 치트 써서 1회차 엔딩 봤다가 허무한 엔딩에 현탐이 와서 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