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수의 미궁 123 HD Remaster 간단 소감

10시간 남짓하고 써보는 감회 글입니다.

세계수의 미궁은 20년 전 닌텐도 DS (Double Screen)라는 휴대용 게임기 전용으로 나온 게임입니다. 장르는 위자드리로 대변되는 던전 탐험물이며, 당시 큰 인기를 끌어서 3DS까지 나왔었죠.

일본 게임판에서 위자드리는 드래곤 퀘스트를 비롯해 가장 대표 주류 RPG 입니다. 그런데 세계수의 미궁이 그토록 히트친 이유는 뭘까요? 닌텐도 DS의 터치스크린을 활용하여 모험 지도를 직접 그리는 아날로그적인 컨텐츠 덕분입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지 못한 시기라서 터치스크린이 달린 휴대용 기기는 매우 비싸고 매니악한 기기로 여겨졌습니다. 터치스크린 전자사전을 쓰고 팜파일럿과 소니 Clie PDA를 썼던 저도 남에게 별난 사람 취급받았죠. 터치스크린이 전세계로 퍼진 건 애플 아이폰이긴 하지만, 그 이전에 닌텐도 DS 또한 터치스크린 기기로 1억대 이상 판매했습니다. 따라서 터치스크린 휴대용 기기의 진정한 대중화는 닌텐도DS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닌텐도 DS 는 게임이 아닌 전자사전이나 메모장 같은 일상 어플리케이션도 많았습니다. 세계수의 미궁은 전통적인 위자드리형 게임에 터치스크린을 접목하여, 모험 지도를 직접 그려서 제작하는 독특한 감성으로 다른 위자드리형 RPG와 차별화되는 재미를 일구어낸 게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닌텐도 스위치는 닌텐도 DS와 달리 화면이 두 개가 아닙니다. 또한, 물리 접촉 펜이 아닌 정전식 손가락 반응형 터치스크린을 쓰고 있습니다. TV로 플레이하는 사람도 있죠. 그래서 위 스샷처럼 한 화면을 갈라서 지도를 한 쪽에 상시 표시되도록 해놨죠.
멋 없죠? 판타지 세계에서 던전 탐험할 때 어느 바보가 지도를 눈 앞으로 치켜들고 돌아다니겠습니까? 여기서부터 세계수의 미궁 HD 리마스터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세계수의 미궁은 지도 그리기가 핵심 컨텐츠인 만큼 위자드리형 게임 중에서도 지도가 복잡하기로 소문난 게임입니다. 특히 1편은 직선형 통로가 거의 없고 자비심 없이 꾸불꾸불거리는 길이 대부분이라서 긴 이동거리 내내 지도를 보면서 방향 버튼을 열심히 눌러줘야 합니다.

그런데 지도를 작성하고 그리는 과정이 원작과 달리 번거롭고 재미없게 변했습니다.
TV (또는 PC Steam) 로 조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조이스틱으로 지도를 그리는 메커니즘을 넣어놨는데 닌텐도 DS 시절에 비하면 번거로움 그 자체입니다. 비유하자면 와콤 신티큐로 그림 그리는 사람에게 엑박패드를 주고 조이스틱과 버튼으로 그림 그리라는 것과 똑같습니다. TV나 PC Steam으로 플레이 하는 사람에게 세계수의 미궁 리마스터는 옛날 원작보다 퇴화되고 번거로운 게임에 지나지 않습니다.
닌텐도 스위치는 여전히 터치 입력이 가능하지만, 닌텐도DS의 물리 접촉식 단단한 펜이 아닌 손가락으로 터치하는 정전식 터치스크린이라서 연필과 달리 선을 정확히 그리기 힘듭니다. 또한, 스위치의 조이콘 컨트롤러는 양 옆으로 분리되기 때문에 화면과 컨트롤러 사이의 간격이 닌텐도 DS 시절보다 넓습니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지도를 그리려고 하면 매번 손의 그립을 떼어내고 화면을 터치 후 다시 컨트롤러를 잡는 번거로운 과정이 추가되었습니다.

세계수의 미궁 시리즈가 내세우는 가장 큰 세일즈 포인트는 직접 모험 지도를 작성해나가는 차별화된 재미였는데요. 리마스터는 모험 지도를 그리는 걸 고된 짐 덩어리로 만들어놨고, 그래픽도 해상도는 올라갔지만 두 화면을 무성의하게 하나로 합치면서 아트적으로는 예전보다 완성도가 떨어져서 멋 없습니다.
세계수의 미궁 HD Remaster 는 실패한 리메이크의 교과서입니다. 과거에 대한 향수로 패키지 일러스트 보는 용도로만 구입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답답하고 재미를 느낄 수 없어서 현탐이 오다가 원작 DS 게임을 틀어보고 이게 진짜 세계수이지 하면서 미소지으실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