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9 (IX) 클리어 소감
전부 복구하지 않고 스킨 기능만 강제로 내린 걸 보니 역시 카카오네요. 이렇게 꼼수를 부릴 건 예상하고 있었기에 빨리 옮겨야 겠습니다.
RTX 4090 구입 기념으로 다시 게임을 플레이하는 중입니다. 이전 RTX 3060 으로는 4K 60 fps 풀프레임이 안 나와서 답답했었는데 역시 사양 끝판왕을 써야 게임도 할 맛이 납니다.
이스 9 전작인 이스 8 은 이스 시리즈 역대급이기도 하지만 당시 출시한 액션 RPG 게임과 비교해도 잘 만들어졌다고 소문난 게임입니다. 스토리, 액션성, 캐릭터성, 몰입감 등 어느 하나 빠질 부분 없는 명작이죠. 특히 가장 잘 만든 건 사운드트랙으로 지금도 OST 를 꾸준히 들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후속작인 이스 9 가 생각보다 빨리 출시되자 요즘 팔콤의 다작+퀄리티 저하로 다소 우려되는 부분이 있어서 플레이를 망설이고 있었죠. 들려오는 평가도 그다지 좋지 못했고 말이죠.
리뷰 작성은 쉬운 난이도로 1회차만 빨리 클리어한 후 했습니다.
1. 스토리 ★
이스8 은 스토리 잘 만들었다고 칭찬이 많았는데 이스9 는 스토리 칭찬이 싹 사그라들만 했습니다. 현행 팔콤 특징인 중2병 테이스트가 기조로 깔려 있고 거기에 더해 식민지 근대화 사관이 진하게 물든 정치적인 주제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8은 중2병이라고 할만한 건 주먹 탁 말고는 딱히 없었는데 이스9 는 어째서 궤적 시리즈 등 다른 팔콤 게임에서 절찬리에 전염중인 못된 중2병에 완전 쩔어서 나온 건지 모르겠습니다. 중2병을 뮤지컬처럼 우아하게 표현하면 몰라도, 부족한 기술력으로 인해 떨어지는 그래픽과 PS2 시절의 연출력, 카메라 워크와 겹쳐진 중2병 스러운 전개는 블랙홀과 같은 오그라듬과 동시에 치명적인 핍진성 결여를 선사합니다.
작중에서 로문 제국에 정복당한 약소 국가 국민은 한편으로는 여전히 저항하고 한편으로는 꿀을 빠는 친로문파가 되어 서로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만으로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인데, 제대로 된 고찰 없이 우리나라 친일파의 대표적 헛소리인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두 세력을 묘사하고 있어서 로문의 식민지 지배를 일방적으로 정당화하고 있죠. 피지배자인 식민지인이 지배자인 로문인을 부당하게 괴롭히고 차별하는 피해자 코스프레 연출로 말이죠. 고작 게임에서 별걸 다 따진다고 보실지도 모르겠지만, 게임은 엄연히 예술의 하나이며 This war of mine 같은 현실을 진하게 반영한 게임도 존재합니다. 다른 악용 사례로 어크 오리진/오디세이의 억지 양성애 강요 진행도 있죠. 정치, 종교, 경제 같은 논란을 일으키기 쉬운 주제는 평가나 판매량을 떨어뜨리기 쉬우므로 정녕 정치적 종교적 중립을 원한다면 창작물에서 사용하고자 하는 주제를 완벽히 파악후 영향을 줄만한 해당 요소를 능동적으로 배제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모르고 그랬다고 뒤늦게 변명하지 말구요.
팔콤을 위해 조금 변을 하자면, 중반부터 이스8처럼 전개가 급변하면서 망국이 된 정당한? 속사정을 밝히긴 합니다. 결국 이스답게 신과 마법의 판타지 월드 일색이고 그 아래에서 고통받고 혼란스러워 하던 민중은 세계의 위기 앞에 상대적으로 별거 아니게 되니 무대 뒷편으로 사라지죠. 게임 시작부터 중2병 가득한 전개이니 만큼 이쪽이 메인이라는 건데요. 그리고 여느 때의 일본 극우 망언들처럼 과거는 아무쪼록 잊고 미래로 나아갑니다.
정리하면, 전혀 넣을 필요가 없는 식민지 정당화를 억지로 집어넣어 위화감만 잔뜩 주는 스토리가 되었습니다. 정치적 요소 없이 아주 평범?하게 혼란스러운 영지 정도로 설정하기만 했어도 액션 게임으로선 이미 과분하게 복잡한 스토리입니다. 제가 엔딩까지 본 이스 시리즈는 이스8과 9 두개 뿐인데, 기승전결 모두 완벽한 이스8 을 먼저 해보고 나니 처음부터 꿀꿀하고 마지막 엔딩까지 찝찝한 이스9 는 중간에 하다 말은 다른 이스 시리즈 만도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2. 그래픽 ★★
음... 팔콤 치곤 노력했습니다. 팔콤 치고는...
섬궤 1 시절에서 조금도 변한 건 없습니다만, 한 화면에 10 명 이상의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나온다든지, NPC 포함 수십명의 캐릭터가 표시된다든지, 로딩없는 맵이 무척 넓어진 건 세월의 흐름과 하드웨어 강화를 느끼게 합니다. 품질은 섬궤1 그대로지만요.
연출도 여전히 모션캡쳐를 도입하지 않고 꼭두각시같은 리깅을 이용한 어색한 방법만 쓰고 있습니다. 만약 팔콤에게 예산이 풍부했다면 구세대 어크 같은 게임이 나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팔콤은 PS2 시절에 출시한 것 같은 구세대 어크 정도입니다.
3. 게임 플레이 ★★★★
전체적으로 이스8 의 고급난이도 버전입니다.
이스8을 클리어하신 분이라면 시작부터 플래시 무브와 플래시 가드가 터지는 걸 보면서 바로 익숙해 하실 겁니다. 이스9는 이스8 을 모든 면에서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어놨습니다. 맵 하나당 등장하는 적의 수나 이펙트도 화려해졌고 사용하는 기술도 눈이 아플 정도로 화려하고 범위가 넓어서 예전처럼 정확히 피하고 때리는 플레이는 힘들어졌습니다. 높은 난이도는 모르겠지만 저난이도에서는 그냥 달라붙어서 우다다 다굴치고 스킬 난무하다보면 어찌어찌 쓰러뜨리게 됩니다.
맵은 구세대 어쌔신 크리드를 떠올리면 딱입니다. 어크 만큼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됩니다만, 그만큼 맵도 엄청나게 어려워졌습니다. 복층 구조는 기본이고 지도를 봐도 이해가 잘 안 갈 정도로 미로같은 맵도 많습니다. 슈퍼마리오처럼 점프나 날아가는 조작의 한계를 이용하고, 인간 심리의 허점을 이용한 깜짝 즉사 함정도 엄청 많습니다. 이스8 후반맵을 훨씬 어렵게 꼬아놨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주인공은 동료를 얻을수록 파쿠르 스킬을 얻어가며 더 자유로운 행동이 가능한데, 다만 다른 지역으로의 진입은 스토리 진행에 철저히 가로막혀 앞으로 전혀 나아갈 수 없습니다. 신세대 어크로 갈수록 진입 제한이 풀리고 대신 적 난이도를 엄청 올리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진입을 막고 있는데 이런 부분도 구세대 어크를 떠오르게 만듭니다. 본질적으론 옛날 JRPG 방식, 그러니까 이스 시리즈 방식 이지만요.
아이템 파밍 및 레벨업 또한 이스8 과 거의 같고, 중간에 이스8 의 몬스터전 같은 디펜스가 펼쳐지는 것도 같습니다. 여기에 궤적 시리즈 같은 RPG 요소를 더 많이 투입해서 달성율 100%를 먹으려면 수많은 마을 사람들과 더 빈번히 이야기해야해서 챕터 별로 하나라도 놓치고 넘어가면 안타깝습니다.
까다로워졌긴 하지만, 후속작인 만큼 쾌적한 플레이를 위한 요소들도 꽤 추가해서 게임 자체는 원활이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픽이라든지 스토리 등 2회차 하기에는 성이 차지 못하는 요소가 많지만, 한번 패드를 잡으면 어느샌가 수시간은 훌딱 지나가 있습니다. 이스8 은 스토리 빨리 진행하고 싶어서 매일 달려들고 어느정도 중독성 있는 플레이를 제공하지만 중간에 피로해져서 패드를 놓게 되는 것과 비교됩니다.
4. 음악 ★★
팔콤 왜이러죠?
팔콤하면 사운드트랙을 내놓기 위해 게임 만드는 회사로 반농담조로 말할 정도로 음악 잘 만들기로 유명한 회사였는데, 이렇게 지리멸렬하다뇨. 특히 전작 이스8 은 온통 명작 음반으로 가득 차 있어서 실망이 더더욱 큽니다. 요즘 궤적 시리즈도 좀 그렇습니다. 거의 매년 내놓다 보니 섬궤 1의 명반 이후로 최근까지 영 별로인 편인데, 이스도 8 내놓은 직후 9 를 내놓아서 그런지 매우 시원찮네요. 한두개 정도 아주 약간 감성을 끌긴 하지만 어느 것도 이스 8 처음 섬에 도착한 직후의 음악 하나 조차 이기지 못합니다.
뭐 전투 하다보면 적절한 편이고 게임하면서 반복해서 듣기 좋긴 합니다만, 음반 단독으로 듣기엔 전작에 비해 매우 떨어집니다.
5. 트로피 난이도 ★★★
이스8 완성판과 동일한 구성이므로 액션 게임 실력이 조금은 필요합니다. 모든 수집요소 100% 가 좀 성가시지만 궤적 시리즈로 꼼꼼히 플레이하는 버릇이 들었다면 1회차에서도 대부분 클리어 가능합니다. 멀티엔딩도 아닙니다.
6. 컨트롤러 적합도 : 둘 다
장시간 하게 되는 액션 게임이므로 엑박 컨트롤러에 약간 손을 들어주고 싶긴 하지만, 기본 버튼 할당이 일본게임답게 플스 최적화라서 위화감이 많습니다. 세팅을 좀 바꾸면 편할 것 같은데 귀찮아서 엔딩까지 그냥 갔습니다.
7. 총평 ★★★
궤적 뭍은 이스8 강화판입니다. 요즘 궤적 스토리 이상하고 음반도 안 좋고 게임 플레이도 질려서 더 이상 안하는데, 마치 유비소프트에서 자사 게임들의 여러 특징을 뒤섞어 차기작을 만드는 방식처럼 궤적 시리즈의 특징을 이스에 대거 투입한 것이 참 맘에 안듭니다. 이스8 도 그런 특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스9의 무대는 무인도가 아닌 사람들이 많이 사는 마을이라 유사성이 더욱 심합니다.
명작인 이스8의 액션을 못 잊어서 이스9를 시도하신다면 말릴 생각은 없지만, 그 외 스토리, 음악 등 전작에서 매력적이었던 요소는 한참 딸리고 컨텐츠 마감도 부족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기대 안하시는 걸 적극 권장합니다. 이스 시리즈를 모르신다면 역대 최고 작품이자 앞으로도 명작으로 기억될 이스8 을 먼저 사시는 걸 적극 추천합니다. PC 로는 공식 한글판이 없는 것이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