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의 사쿠나히메 클리어소감
쌀농사를 깊이 다룬 이색적인 게임으로 알려진 사쿠나히메를 클리어했습니다. 발매 당시 스위치판으로 구입해서 플레이하다가 적응이 안되서 그만뒀었는데, 공략이 많이 나온 덕분에 처음부터 재시작하여 클리어를 봤습니다.
천수의 사쿠나히메는 인디 게임 제작사로 이름이 높았던 에델바이스가 무려 5년의 세월을 들여 개발한 액션 게임입니다. 제가 구입했을 때에도 인디게임 스럽게 제작자의 취향이 마음껏 반영된 걸 기대하고 샀는데, 제작기간이 길어서 그런지 생각 이상으로 완성도있게 잘 가다듬어져 있는 한편, 파고들수록 동인스럽게 허접한 부분도 있는 걸 보고 안심(?) 했습니다.
1. 스토리 (★★★)
천수의 사쿠나히메는 크게 두가지 페이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년 4계절 주기로 반복되는 벼농사로 매해 기본 능력을 육성하고, 던전 공략을 통해 벼농사에 도움이 되는 비료를 얻거나 스토리를 진행합니다. 장르는 분명 2D 액션 플랫포머인데 스토리 진행 및 게임 공략을 위해서 벼농사는 필수 불가결인 특이한 구조입니다.
따라서 스토리도 벼농사를 확대하거나 재해로 망가진 논밭을 복구하는 농사 위주로 흐르게 됩니다. 게임의 배경이나 주인공의 인간관계는 외국인으로선 동감이 가기 어려운 일본 창세 신화를 기반으로 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도 아무런 지장없습니다. 그럼에도 스토리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어려운데요.
주인공과 주변인물이 코믹하고 매력적인 캐릭터성을 지니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사쿠나히메는 물론, 조연과 악연 모두 일본식 스토리답게 진짜 악인은 없다는 세계관 아래 귀엽게 투닥거리고 싸우며, 이벤트 컷씬도 인디 게임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아기자기한 모션으로 게임을 즐겁게 만들어줍니다. 덕분에 반복되는 농사일로 발생하는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진도를 빨리 밀게끔 밀어주는 원동력을 제공하는 평작 이상의 연출이었습니다.
2. 게임성
(1) 농사 (★★)
정작 게임에서 가장 골치아팠던 건 무난한 스토리가 아닌 농사일이었습니다. 3년 전 제가 접은 이유도 농사가 어렵게 느껴지고 농사를 망쳐서 게임을 원활히 진행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공략이 충분히 풀린 지금 시점에서 재조사한 결과, 농사일은 아무것도 아니고 그저 노가다였습니다. 아주 완전히 망쳐버리지 않는 한 농사 결과는 큰 기복없이 일정한 수준으로 나오며, 매년 능력 성장치가 큰 폭으로 오르기 때문에 진행을 잠시 멈추고 농사일만 몇년 전념하면 게임을 아주 쉽게 풀어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농사일 만의 매력도 있습니다. 특히 처음 농사일을 배울 때 생각보다 본격적으로 느껴져서 감탄하게 되고, 어떻게든 농사일을 잘해서 결과를 크게 증폭해보고자 마음먹게 됩니다. 그게 함정이었지만요. 한 번 농사일에 익숙해지면 그저 노가다로만 여겨지는 지루한 삽질이 됩니다. 천수의 사쿠나히메 게임의 정체성이자 가장 핵심요소가 지겹게 느껴진다는 건 게임 컨섭에 뭔가 하자가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2) 액션 (★★★★)
다른 부분도 그렇지만 전투 시스템을 파고 들수록 인디스럽게 어색하고 불친절한 부분이 보입니다.
첫인상은 저같은 액션치도 쉽게 익숙해지는 괜찮은 조작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고전적인 2D 벨트액션게임 구성이며, 다양한 특수 공격과 무기 상성을 이용해 좌우 양쪽에서 떼로 몰려드는 적을 상쾌하게 날려버립니다. 기본 공격을 연타하면 콤보로 계속해서 공격할 수 있고, 게임을 진행하면서 얻는 특수 공격은 숙련도를 쌓을 수록 점점 더 강력해지며, 맵을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쫀득이 같은 접착 날개옷을 날려 스피디한 던전 공략이 가능합니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던전 공략이 만만치 않음을 뜻합니다. 날개옷으로 하늘을 몇 번씩 날아야 통과되는 플랫포머 특성이 짙으므로 저같은 액션치는 뒤로 갈수록 고생했습니다.
또한, 쉽게 익숙해질 수 있지만 마스터는 어려운 은근히 까다로운 조작성입니다. 이 게임은 2D 플랫포머 액션 게임이므로 모든 공격은 대전격투겜처럼 앞 아니면 뒤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공격시 항상 콤보가 들어가며, 콤보가 이어지는 도중 = 공격 모션을 시작해서 공격 후 경직인 후딜레이가 끝날 때까지 방향 조작이 안 먹히고 공격 조작만 먹힙니다. 그 결과, 오른쪽의 적을 두들겨 패서 다 없앤 후 왼쪽의 적을 때릴려고 방향을 바꿔도 계속해서 오른쪽 허공으로만 손질 발질하는 삽질을 지켜봐야 합니다. 이를 피하려면 공격시 딱 필요한 커맨드만 입력하고 후딜레이가 완전히 끝나자 마자 방향조작과 함께 공격버튼을 정확히 입력하는 요령이 필요합니다. 대전격투 고수나 액션겜 고수에겐 우스운 설명이겠지만 저같은 액션치는 오로지 조이스틱을 기울인 채 열심히 공격버튼 연타하는 게 전부입니다. 덕분에 공격의 맥락이 자꾸 끊기고 어렵게 되어 짜증납니다.
얼마전 클리어한 젤다 야숨도 똑같은 방식으로 한번 공격하면 연타시 공격 방향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젤다가 사쿠나히메만큼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은 건 연타 공격이 기본이 아니고 3D 게임이라서 적의 수가 많지 않아서 덜 바쁩니다. 반면 사쿠나히메는 오직 앞과 뒤로만 공격하는 2D 플랫포머이고 적의 수가 기본 10 마리, 많게는 수십마리 나올 정도로 바글대기 때문에 적을 빠르게 청소해야 생존할 수 있으며, 모든 공격이 콤보를 전제로 하기에, 한쪽 방향의 적이 전부 제거되어 허공으로 삽질하며 콤보가 끊기는 주인공을 볼 때마다 복창이 터집니다. 마치 조작법은 간단하지만 타이밍을 정확히 맞춰 입력해야 하는 리듬게임 같습니다.
그래서 저같은 액션치에겐 사쿠나히메가 젤다보다 답답하고 부당하게 느껴집니다. 덕분에 젤다 야숨은 10시간 해도 지치지 않지만 사쿠나히메는 두세시간만 해도 짜증으로 폭발하는 상황이 잦아 그만두게 됩니다. 복잡한 조작이라도 잘 만들면 야숨처럼 쾌적합니다만 이 게임은 복잡하면서 잘 만든 조작감은 아닙니다.
3. 그래픽 (★★★)
인디 게임 치고는 괜찮은 B급 수준입니다. 캐릭터나 던전의 깔끔한 구조 등 필요한 곳만 잘 강조되어 있습니다. 제작사가 경험이 많은 것도 있고, 5년이 걸린 제작기간 덕도 있는 것 같습니다.
4. 음악 (★★)
배경음은 그저그런 일본 트로트입니다. 일본어 농가도 그렇고, 스토리와 함께 쉽게 몰입할 수 없는 요소였네요. 그래도 전투시 효과음이나 타격음은 상쾌한 벨트스크롤 액션 게임의 미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5. 트로피 난이도 (?)
3년 전 스위치에서 할만한 게임이 없어서 스위치 버전으로 구입했기에 도전과제가 어떤 것이 있는지는 모릅니다. PS4 나 스팀 버전에는 도전과제가 있습니다.
6. 컨트롤러 조작 : 스위치 프로 호환 컨트롤러
인디 게임 스럽게 버그가 좀 있는 편입니다. 액션성이 높기에 안정적인 스위치 프로 컨트롤러를 쓰는게 좋으나, 프로콘은 오른쪽 스틱의 이동 속도가 좁아지는 버그가 있어서 게임이 방해받습니다. 조이콘을 쓰거나 스위치 프로와 같은 모양인 서드파티 컨트롤러를 쓰면 정상적인 게임이 가능합니다.
7. 총평 : ★★★
인디겜 색안경을 벗고 왠만한 B~A- 급으로 봐도 무난한 액션게임입니다. 벼농사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무난한 벨트스크롤 액션게임만 남습니다. 스토리는 이해하기 어려우나 아기자기한 캐릭터성으로 게임을 계속 플레이 할만한 동기가 충분하고 스파이더맨처럼 휙휙 날아다녀야 하는 던전 공략도 나름 도전적입니다. 대단한 게임은 아니지만 무난한 킬링타임용 액션게임으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