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버본 소감
튜토리얼로 시작한 맵 하나만 붙잡고 30시간 가까이 플레이 했지만 아직도 끝이 안 보입니다.
튜토리얼이 끝나도 튜토리얼 맵을 계속 플레이하여 두번째 종족을 해금하는 단계까지만 플레이 할 생각이었는데, 해금하는데 6시간이 걸렸습니다. 돌이켜 보면 두번째 종족 해금 조건은 게임을 처음으로 제대로 이해하고 앞으로 계속 플레이할 수 있게 만드는 일종의 마일스톤 역할이었습니다.
팀버본은 말 잘 듣고 일만 하는 비버들을 데리고 댐을 세워 수위를 올리고 수로를 파서 관개농업을 하고, 마지막에는 지형을 모조리 갈아엎는 개조로 물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처음 시작하면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가뭄과 오염수 범람에 비버들이 떼죽음 당하지만, 주기를 거듭하면서 생존할수록 거주촌은 점차 커지고 강해지며, 머나먼 수원을 거슬러 올라가 마침내 수원을 직접 관리할 수 있게 되는 순간 가뭄과 오염수 걱정이 사라지고 심시티에만 전념할 수 있습니다.
거주촌을 키우는 과정에서 수많은 자원과 물류 문제가 플레이어를 괴롭히지만 비슷한 게임에 비해 월등히 간단해서 초보자도 재밌게 플레이 할 수 있습니다. 자원 종류가 많지만 해당 자원을 써서 뭔가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아니라면 굳이 테크트리를 올리지 않고도 생존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물류도 ANNO 1800 이나 섭시티 류처럼 극악으로 귀찮지 않고 길을 무한대로 이동할 수 있어서 단순합니다.
따라서 정묘한 시뮬레이션 심시티나 마이크로 컨트롤은 타 게임에 비하면 부족합니다만, 이 게임은 절대 간단하지 않습니다. 각각의 요소를 깊게 파고들기 보다 얕으면서 넓게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플레이하면 할 게 산더미 같아서 마이크로 컨트롤해야 합니다. 운영이 단순하다 해도 효율적인 심시티를 할 수 있도록 지형을 깎아내리고 물이 잘 흘러내리도록 수로와 댐을 건설하는 고민을 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쉽게 말하면 마인크래프트에서 농사짓고 주민 데려오는 심시티하는 느낌입니다.
게임성은 타 게임에서 이것저것 가져와서 조립한 듯 보이지만 이 게임만의 개성도 있습니다. 주인공이 비버라는 점을 활용하여 침수되도 죽지 않고 물 속을 자유자재로 헤엄친다든지, 인간이 멸종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에서 인간의 이기를 사용하는 비버의 재미난 모습 같이 게임 내 세계관에 몰입할 만한 장치가 잔뜩 마련되어 있습니다. 게임 내용이 널고 얕더라도 각각의 요소가 따로 놀거나 상충되는 일 없이 조화롭게 합친 게임성 또한 경이롭습니다.
얼리엑세스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단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먼저, 마이크로 컨트롤이 과다하게 요구되는 플레이입니다. 초반에는 정착촌을 클릭해서 관리해줘야 할 일이 넘쳐나며 중반부터는 지형과 수로를 만드느라 손목이 아플 지경이 됩니다. 긴 시간 플레이하더라도 피로감을 최소화하는 팩토리오의 유저 친화적인 UI 를 빨리 도입해야 하는데 제작진이 언제 추가할지 기약할 수 없습니다.
마치 문명처럼 게임성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게임이 한도 끝도 없이 질질 늘어집니다. 앞서 두번째 종족 해금까지 6시간 걸렸다고 했는데, 현재까지 30시간 가까이 플레이 했는데도 이제 겨우 절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팩토리오 할 때와 마찬가지로 게임 한 판 끝내려면 100 시간은 기본으로 가는 게임입니다.
그런데 게임 속도가 느립니다. 최적화는 굉장히 잘 되어 있어서 3단계 최고 속도로 플레이해도 프레임이 내려가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느려서 가뭄 주기가 오려면 현실 시간으로 10분 가량 내버려둬야 합니다. 비버 아니랄까봐 지형을 깎아내고 건물 짓는 속도도 느리기 짝이 없어서 그냥 게임 켜놓고 딴 짓하게 됩니다. 팩토리오처럼 자원만 있으면 건물을 바로 건설하고 지형을 깎아낸다면 훨씬 경쾌하고 스피디하게 게임을 할 수 있을 텐데, 이미 게임성의 일부로 확립된 상태라 어지간하면 정식 출시해도 변경되지 않을 것 같아 아쉽습니다.
아직 얼리엑세스 입니다만 컨텐츠가 방대해서 맵 하나당 100시간은 즐길 수 있는 타임머신입니다. 다만 팩토리오와 달리 유저 편의 UI 가 부족하고 페이스가 느려서, 한 판 끝난 후 다음 판 게임을 즐기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하는게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