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볼 카카로트 깔짝 소감
요즘에는 게임을 자주 못하고 있습니다. 푹 빠져들만한 요인이 안보이면 하다가 시무룩해져서 금방 멈추곤 합니다. 드래곤볼 카카로트도 하루 몇 분 씩 깔짝거리며 한 두달 플레이 하다가 오늘 결국 플레이를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카카로트는 드래곤볼 캐릭터 게임 중 나름 평가가 좋다고 하여 사본 건데, 게임 자체의 매력은 부족하고 IP 빨에 기대야만 몰입할 수 있는 반픈월드 게임이었습니다. 근래 플레이 중인 게임 중 카카로트와 가장 유사한 걸 고르면 호그와트 레거시 입니다. 레거시도 기본적으로 IP 빨에 기대는 편이고 카카로트처럼 오픈월드에서 IP 만의 세계관을 음미하는 계열입니다.
카카로트의 전투 시스템은 평범한? 액션 격투 게임에 속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가드, 패링, 스턴 등 격투 게임으로서 기본적인 요소가 전부 구현되어 있고 복잡한 버튼 조합 조작을 정확히 구사하면 한 대도 안 맞고 이길 수 있습니다. RPG 로서 레벨 격차는 어쩔 수 없지만 스토리는 전부 무난히 깰 수 있습니다. 어디선가 많이 봤을 텐데 사실 호그와트 레거시도 비슷한 격투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호그와트 레거시는 세계관에 충실한 지팡이 싸움인데 카카로트는 수많은 IP 와 게임에서 사용하는 온몸 격투(?) 라서 신선도가 떨어지고 몰입감도 낮은 편입니다.
카카로트의 가장 큰 단점은 몰입이 힘든 미숙한 반픈월드입니다. 드래곤볼은 원본 IP(만화책)부터 세계관 묘사가 치밀하지 못한 편이라서 오픈월드를 구현하기에 적당한 IP 가 아닙니다. 빈곤한 IP 를 빌려온 이상 세계관 묘사도 텅텅 빌 수 밖에 없고, 그게 카카로트의 공허한 필드가 되었습니다. 오픈월드 게임의 정체성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개발진은 소닉 프론티어처럼 맵 곳곳에 레벨업 아이템을 뿌려놓습니다. 이건 유비 어크 시리즈의 단골 메뉴이기도 합니다. 근데 하나 주워봤자 소용없고 수백 수천개를 얻어야 레벨업이 가능할까 말까한 폐지줍기 입니다. 노가다는 의미없고 그냥 스토리만 죽죽 진행하는게 나은데, 그럼 오픈월드로 만든 의미가 더더욱 없죠? 소소한 사이드 퀘도 어크 오리진처럼 흥미가 가지 않는 소소한 이야기 뿐이고, 당연하지만 원작에서 이미 정해진 메인스토리 전개에는 코뿔만큼도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호그와트 레거시는 카카로트와 비교되는 훌륭한 오픈월드 게임입니다. 저는 해리포터 IP 중 1~3권에 해당하는 IP 일부만 좋아합니다. IP 를 전부 알고있는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제가 호그와트 레거시에 푹 빠져들었던 이유는 아발란체 스튜디오의 오랜 노하우가 스며들어 있는 적당한 오픈월드 게임성도 있지만, 해리포터 세계관을 정말 멋진 오픈월드로 구현하여 훌륭한 몰입감을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해리포터의 판타지 세계를 단순히 구현한 것만이 아니라 확대 해석한 새로운 내용으로 즐겁고 신선한 경험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풍성한 IP 를 멋지게 구현하고 그 사이에 수집템을 뿌려놓으면 유비 어크 시리즈의 불쾌함 보다는 다음에 만날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감으로 게임에 빠져들게 됩니다. 카카로트는 원래부터 전투에 초점이 맞춰진 오픈월드에 안 맞는 IP + 세계관을 확장시키지 못하여 폐지나 줍는 오픈월드 게임이 되었습니다.
다른 드래곤볼 게임에서 볼 수 없는 카카로트 만의 특이한 점이 있다면 발매 후 DLC 로 추가된 카드 게임입니다. 드래곤볼 카드게임은 역사가 유구하고 여러 플랫폼으로 다양하게 전개한 굉장히 강력한 IP 입니다. 지금도 과거 패미컴 시절에 나온 드래곤볼 카드배틀 RPG 게임을 기억하는 분들이 저를 포함해서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옛날 패미컴 카드배틀 게임을 다시 해보면 미숙한 점이 많이 보입니다. 현대 유희왕처럼 치밀한 카드게임이라기 보단 접대용 게임처럼 스토리 진행을 보조하는 개념의 단순한 미니 게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전개에 딱 맞게끔 강력한 카드가 주어지고 원작 만화를 따라가는 연출 덕분에 게임에 푹 몰입할 수 있었고, 지금도 플레이했던 사람들에게 강렬한 추억을 남기고 있습니다.
유감스럽지만 카카로트의 카드배틀은 과거의 접대용 RPG 게임과 비슷하지 않습니다. RPG 요소도 없고 원작 전개를 따라가는 불끈함도 없이 상대와 1:1 로 맞붙어서 수많은 덱 룰에 따라 공방을 벌이는 유희왕류 카드 게임입니다. 원작에선 허접한 미스터 사탄이나 덴데라 해도 카드 게임 위에선 특수 룰로 플레이어를 골탕먹이고 이쪽도 머리를 써야만 이길 수 있습니다. 유희왕 같은 카드 게임에 익숙한 요즘 트렌드를 따라가는 사람이라면 나름 재밌게 플레이하겠지만, 과거 카드배틀 RPG 를 연상하고 카카로트에 비슷한 카드게임이 있다는 말을 듣고 구입한 유저라면 반드시 실망할 겁니다. ← 접니다.
저는 드래곤볼 시리즈를 파고드는 유저가 아니라서 드래곤볼 게임에도 별로 관심없는 편입니다. 카드 배틀이 있다는 말에 흥미가 가서 사봤지만 본편이나 DLC 컨텐츠나 제가 바라는 게임성은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