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irn 클리어 소감

어렸을 때 부모님따라 주말마다 등산가면서 대체 무슨 재미로 하는 건지 잘 몰랐습니다. 나이가 들어 회사 다니면서도 간간히 등산을 갔는데, 그 때도 잘 몰랐습니다. 이제 등산이 힘든 나이가 되니 조금은 알 것 같아졌습니다. 아니, Cairn 이라는 등반 게임을 하면서 등산을 하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도 관악산 등을 오르다 보면 암벽에 사람이 붙어있는 걸 신기하게 봤었거든요. 그때나 지금이나 겁쟁이인 저로선 쳐다보기도 싫었는데, 이 게임은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암벽 등반 시뮬레이터 입니다.


주인공의 목표는 백수십명이 등반하다 죽은 악마의 처녀봉의 정상에 오르는 것입니다.

첫 죽음입니다. 이 때만 해도 등반 시뮬레이터를 표방한 낙사 시뮬레이터인 줄 몰랐죠.

첫 죽음은 연속 사망 사건을 불렀습니다. 이 게임의 난이도를 우습게 본 저는 그제서야 제 깜냥을 알고 모든 난이도 설정을 최하로 내렸습니다. 그래도 잘 죽더군요. ㅠㅠ

게임이 마냥 불합리하게 어려운 건 아닙니다. 방대한 맵의 수많은 진로를 본인이 직접 선택할 수 있고, 지도 곳곳에 숨어있는 아이템을 찾으면 위 사진처럼 친절하게 등반 코스도 보여줍니다.

간혹가다 거미처럼 허우적거리는 기묘한 모습을 보여줍니다만, 실제 등산가들의 말에 따르면 현실 암벽 등반 테크닉에 매우 가까운 게임이라고 하더군요.

고된 (그리고 종종 사망하는) 등반이었지만 한 단계 넘어갈 때마다 내가 해냈다! 야호오오오! 하는 성취감은 충분히 잘 전달되었습니다.


한층 한층 올라갈 때마다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은 그저 감탄만 나옵니다. 그래픽은 텔테일 게임즈의 워킹 데드 같은 세미 카툰 랜더링으로 입문 장벽이 될 정도로 투박해 보이지만, 그래픽을 압도하는 아트워크와 워킹 데드에서 보여줬던 훌륭한 연출 컷씬은 금방 스토리에 푹 몰입할 수 있게 해줍니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새로운 난관이 터지고... (저 꼴로 잠을 잘 수 있는 거야?!)

설마 벽에 매달린 채 삼 일 간 등반해서 겨우 완주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등반의 고진감래는 꿀맛.
이건 진짜 등산 안 해본 분은 모르는 겁니다.

이유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정상으로 가자.


야호오오오오오!!! 슈우우우웅!

엔딩 후에는 맵 전체 및 지금까지 지나온 경로를 되돌아 볼 수 있습니다. 직접 힘들게 등반한 만큼 모든 구간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더군요.

사놓고 대기발령 해둔 게임인데 막상 잡으니 끝까지 플레이하게 되고, 게임을 하면서 느낀 경험이 정말 인상깊고 개인적인 추억을 자극하는 게임이었습니다. 이래서 등산하는 것 같습니다. 클라이밍은 예나 지금이나 절대로 못하겠지만 동네 낮은 산이라도 한 번 등산 나가봐야 겠습니다. 저보다 젊은 사람이라면 이 게임을 한 후 클라이밍에 관심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