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색 - 도색부스 DIY
그라인딩 하면서 하도 톱밥이 많이 나와서 이번에 목범선용 도색부스를 제작했습니다. 보통 프라모델 도색부스와는 몇가지 다른 점이 있는데,
(1) 도색만이 아니라 평소 작업시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넓은 공간 사용 (60 x 40 x 40 cm)
(2) 작업시간이 긴 관계로 외부 환기 이외에도 '내부 순환' 시스템 채용 (에어컨 공기 아낌;)
(3) 공간을 많이 차지하므로 접이식 휴대 디자인 채용
(4) 공구를 걸 수 있도록 튼튼한 내구성
첫번째는 그냥 도색부스를 크게 하고 좀 더 강력한 시로코팬을 사용하는 걸로 했고, 두번째는 시로코팬 배출구에 T 자 관을 달고 양쪽에 댐퍼(칸막이)를 달아서 용도에 맞춰서 개폐하는 방식으로 했습니다. 다행이 나름 의도대로 잘 작동하는데 아쉬운 점도 몇 개 있어서 적어봅니다.
(1) 두꺼운 필터는 잘 막힌다
문방구에서 파는 부직포는 왠만한 공기청정기만큼 필터링이 강력하고 바람이 약해집니다. 그래서 시로코팬이 강력하더라도 흡입력이 좀 약해졌는데, 그래도 강력한 필터만 믿고 붙였습니다. 그런데, 작업하다보니 너무 필터가 강력해서 바람이 전혀 안 통하는 일이 벌어지더군요. 한참 에어브러쉬로 락카칠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락카 냄새가 자욱해지더라구요. 도색 부스를 자세히 들여다 보니 자욱한 락카 분진이 도색부스 틈으로 모락모락 빠져나오더라구요. 통풍이 제대로 되면 있어선 안 될 일이었고, 실제로도 초반엔 별 문제 없이 작동했습니다. 그런데 작업 중반쯤 들어서부터 이런 일이 발생해서 필터를 의심하고 칼로 잘라보니, 부직포 두께가 1.5배 정도로 불어났고 딱딱히 굳어있더군요. 너무 심하게 도료 입자가 달라붙어서 층을 형성해버렸던 것입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바로 부직포를 교체했더니 다행이 다시 배기가 원활이 되긴 합니다만, 이미 방 안에 퍼진 락카냄새는 어쩔 수가 없어서 한참동안 환기해야 했었네요. 문방구 부직포가 자주 교체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몇백원 한장에 필터를 몇장이나 뽑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고, 강력한 필터링이라는 건 그만큼 외부로 배출되는 오염물질도 적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자주 교체해야 하는 것만 명심하면서 그냥 쓰기로 했습니다.
(2) 아크릴판은 돈x랄
도색부스가 워낙 크다보니 흡기력도 약해져서, 공기의 흐름을 강하게 만들고자 6면을 거의 다 막아두기 위해 눈으로 보이는 부분은 투명 아크릴 판으로 대었습니다. 처음엔 유리보다 더 쨍한 투명도 때문에 즐거워 하면서 작업했는데, 위에서 언급한 도색 중 락카 역류 현상이 일어나자 도색부스 내부에도 락카 입자가 들러붙더군요. 즉, 투명 아크릴 판에도 도료 입자가 들러붙어서 허옇게 먼지가 끼기 시작하더군요. 아직 첫 도색에선 심한 수준은 아닙니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투명 아크릴을 쓰는 의미가 사라질테니 소모품 개념으로 생각해야 할 판입니다. 문제는 문방구에서 파는 아크릴판보다 더 큰 건 따로 주문재단 해야 해서 비싸다는 거죠... 이건 추후에 개선해야 할 과제로 넘기렵니다.
(3) 영일락카는 핵폭탄
저렴하게 쓸 수 있는 영일락카로 일부 부품 도색을 시도해봤는데.... 도색용으로 적합하다는 특수노즐을 써도 한번에 어마어마한 양이 나오더군요. 한번에 도색부스 내부가 은색입자로 순간 꽉 차버리고, 금방 배기되었지만 그렇게 몇 번 쓰고 나니 위의 부직포 필터가 그냥 맛이 가버려서 계속 교체하면서 써야 했습니다. 도장도 한두방 만에 전체가 은색이 되어버릴 정도로 편했지만, 그 말을 반대로 하자면 너무 많이 뿌려져서 도색면의 디테일-패널라인 엑센트 등-도 전부다 먹혀버렸다는 겁니다. 기껏 에어브러쉬로 섬세하게 표면 무늬를 살려서 뿌려놨는데, 락카 뿌리고 나니 그냥 민둥산이 되어버렸네요. 뿌리는 양을 줄일려고 살짝 누르니, 이번엔 특수노즐의 분사구에서 물방울이 파바바박 튑니다. 그래서 그냥 뿌리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나오는 양도 문제이고 처리도 일반적인 도색부스가 절대로 감당해낼 수 없는 게 영일 락카입니다. 절대로 실외에서 쓰도록 만들어진 제품인 것 같네요. 이렇게 된 이상 영일락카를 그대로 계속 쓰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으니, 인터넷에서 본 팁대로 LPG 빼내고 락카즙만 도료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전환해야 겠네요.
처음 제작하는 거라 일반적인 도색부스의 범위를 여러모로 넘어서는 디자인을 사용했더니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네요. 많은 경험이 되었으니 차세대 도색부스를 만들 때 대부분 해결하도록 노력해봐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