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범선 개봉 - 클래식 키트 2종 (8/27)
저번에 개봉한 중국제 목범선의 품질에 너무 실망하여 다시 서양 제작사들의 제품을 기웃거리다가 이베이에 구형 목범선들이 너무 싼 가격에 나오길래 덥석덥석 구입해버렸습니다. 개당 거의 $100 이면 현재 나오는 $300 이상의 제품을 구입할 수 있더군요. 개봉하고 나서야 깨달았지만, 구형 제품의 가격이 저렴한 것은 그럴싸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먼저, 프랑스의 제작사 Soclaine 에서 나온 La Recouvrance 1/50 모형입니다. 80cm 으로 미터급은 아니지만 난이도로 치면 중상에 해당하는 중대형 함입니다. 다만 스쿠너 (돛이 납작함) 타입이라 제작 자체는 약간 쉬운 편입니다. 가로 세로로 입체적으로 돛이 짜여진 경우 제작 난이도가 급상승하죠.
뒷면에는 다른 제품들의 광고가 잔뜩 있습니다. 쏘클레인은 1980년에 설립된 비교적 젊은 (?) 회사이며, 역사가 짧다보니 나온 목범선 키트도 많지 않습니다. 물론 퀄리티도 수십 수백년 된 다른 모형 회사와 비할 정도는 아닙니다.
사실 쏘클레인의 진정한 문제는 따로 있는데....
모든 게 불어로 쓰여져 있다는 겁니다!!! 설명서도 전부 불어입니다!! 영어는 단 한군데도 없기 때문에 조립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듭니다. 다행이 이 제품이 나온지 30년이 흘러서 지금은 핸폰 번역기를 쓸 수 있으니, 목범선 하나를 만들기 위해 옛날에 학교에서 잠깐 배웠던 불어를 다시 공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위의 책자형 설명서는 얇게 조립하는 지침만 설명할 뿐, 현대 Artesania 의 매뉴얼처럼 친절한 수준은 결코 아닙니다. 이렇게 A0 사이즈의 1:1 스케일 커다란 종이 한장 달랑 주고 따라하는 걸 보면 말이죠.
게다가 전부 불어!!
입체적인 돛 부분은 제 공간지각능력을 총동원해야 합니다.
치장을 위한 부속은 빈곤한 편입니다. 보통은 보기 좋은 황동으로 만드는데 여기선 녹슬기 쉬운 철로 만들었네요. 게다가 돛도 직접 잘라서 재봉해야 합니다. 난이도가 쭈욱 올라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목재 스트립은 그닥 나쁜 편은 아닙니다만 세월이 좀 지나서 상태가 안 좋긴 합니다.
사실 진짜 문제는, 이 제품은 레이저 커터가 보급되기 전에 나온 제품이라, 옛날 기술인 프레스톱으로 쾅쾅 찍어 나온 제품이라는 겁니다. 레이저 커터는 정교하게 두꺼운 나무판을 잘라낼 수 있지만, 그냥 톱으로 잘라내면 절삭면이 사진처럼 매우 허접하게 나옵니다. 저거 전부 다 다듬고 하면 단차와 유격도 커지는데... 일이 제곱으로 느는 거죠....
그나마 갑판은 잘려져 있지도 않네요 헤
두번째는 그 유명한 Artesania 에서 나온 BLUENOSE-II 1:17, 레퍼런스 번호 20500 제품입니다. 이 제품은 옛날 80 90 년대에 나온 제품이며, 현재는 리뉴얼해서 다른 박스포장으로 더 비싼 가격에 판매중이기도 합니다.
뒷면은 스티로폼으로 보강되어 있는 박스입니다.
역시 목범선 잘 만드는 회사는 다릅니다. 30년 전 키트임에도 불구하고 부속이 빵빵하네요. 관리하기 쉬운 플라스틱 보관함은 이때에도 있었나 봅니다.
스트립과 나무 상태도 매우 좋은 편입니다. 휘어져 있지도 않고, 특히 레이저 커팅도 아닌데 굉장히 깔끔하게 잘라져 있습니다. 상당한 기술과 노하우가 느껴지네요.
하이테크 컷이라고 하는데, 당시 기술로는 이정도가 한계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레이저 커팅에 버금갈 정도로 정교한 커팅이라 감동스럽습니다.
돛 재질은 아마포인 것 같습니다. 좀 더 촘촘한 초미세사를 쓰면 어떨가 싶은데 말이죠...
설명서 스타일은 위의 쏘클레인과 비슷합니다. 얇은 책자 형태의 기본 조립 지침과, A0 사이즈의 커다란 실제 사이즈의 도면으로 말이죠. 리뉴얼해서 현재 판매중인 BLUENOSE-II 는 아마 레이저 커팅 + 사진을 무수히 넣은 친절한 설명서 형태로 개선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30년이 넘은 오래된 키트를 구입하고나서야 알았는데, 목범선은 원래 오래된 키트는 구하지 않는게 좋다고 합니다. (모형 키트 컬렉션 하는 분의 말) 플라스틱과 다르게 나무는 시간이 지나면 변성하거나 좀이 슬 수도 있으니까 가치가 하락한다고 합니다. 물론 나무도 니스 칠하고 하면 보존기간이 늘어납니다만, 조립 전의 생나무 상태에선 약할 수 밖에 없죠. 게다가 목범선 키트로서는 혁신적인 레이저 커팅 기술이 보급된 건 2000년대에 접어든 이후이니, 그 이전에 나온 목범선 키트는 판재와 용골 하나하나 쓸만한 수준으로 다듬는 번거로운 작업까지 추가됩니다.
그냥 싼 맛에 많은 목범선을 만들고 싶어서 덜컥 구입했는데, 역시 싼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목범선에 입문하시는 초보자 분들은 반드시 Artesania 최신 제품으로 작업하시는 걸 꼭꼭 추천해드립니다. 그리고 경험자들도 돈 있으시면 골치 덜 썩히고 빨리 작업할 수 있는 최신형으로 사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