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수록 실망스러운 어쌔신크리드 발할라
110시간 플레이에 본편은 절반 정도, DLC 로 추가된 맵도 두개 올 클 한 상태에서 올리는 소감입니다. 이 게임은 이전에 올린 어크 시리즈에 비해 진도가 영 안나가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발할라.
바이킹.
노르웨이.
컨셉만 보면 누구나 눈덮힌 설산을 배경으로 바이킹의 거친 도끼질을 연상할 겁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웅장한 노르웨이 피요르드 지형을 배경으로 힘들고 가난하지만 누구보다 명예를 중시하며 살아가는 바이킹 일족의 이야기를 그리는 듯 합니다.
이전 오리진과 오디세이를 해본 유저라면 초반부터 약간 불편했다가 금세 쾌적함을 느끼실 겁니다. 유비는 워낙 의외의 방향으로 멋대로 막 나가서 그렇지 생각보다 유저의 소리를 잘 들어주거든요. 이전 오디세이에서 불편했던 조작이나 요소들이 생략되거나 통합되면서 나름 편하게 게임할 수 있고, 게임 시스템이 플레이어를 부당하게 억제하는 부분도 예전보다 덜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눈덮힌 노르웨이는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스테이지였고, 초반 퀘스트 몇개 클리어하면 바로 어크 유저들에게 익숙한 초원으로 날아옵니다! 그것도 영국으로요! 이미 옛날에 왔었는데! 신디케이트에서 마차 타고 신나게 돌아다녔는데!
영국... 영국 땅 하면 뭐가 떠오르나요? 비가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 하루종일 끼는 안개? 맙소사! 발할라의 주 무대는 이 모든 요소가 다 합쳐진 잉글랜드 였습니다! 틈만 나면 안개가 끼고 비는 추적추적 내려서 시야는 최악인데 볼만한 지형은 하나도 없이 모조리 언덕이나 평야 뿐입니다.
볼만한 건물? 12~13세기 중세 암흑시대 한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어서 로마 시대의 찬란했던 유적은 다 파괴되어 있습니다. 아직 덜 파괴된 숨겨진 로마시대 폐허를 돌아다니는 것이 바이킹 건물이나 영국인 성을 돌아다니는 것보다 찬란하고 화려할 정도죠. 이미 간 적 있는 영국 배경 + 하필이면 가장 재미없고 볼 거 없는 중세 암흑시대 영국 배경이라니 제작진은 정신 나간 겁니까? 어크시리즈 답지 않게 게임 속에 나오는 것 중 하나도 이색적이지 않고 원시 부족 (파크라이 프라이멀?)을 보는 것 같아 흥미를 끄는 요소가 없습니다.
시즌패스 혹은 DLC 형식으로 추가된 맵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일랜드 - 잉글랜드보다 더 심각하게 허름한 시골 촌동네입니다. 프랑스 - 와! 파리!...... 중세 암흑시대라는 걸 잊지 마세요! 그냥 잉글랜드에 있던 건물 재탕이고 입는 옷도 전부 거지꼴입니다! 스카이섬 - 스코틀랜드 구석에 있는 섬입니다. 아일랜드보다 더 심각한 촌구석입니다!
명색이 발할라면서 어떻게 초반 튜토리얼맵 단 하나만 바이킹이 살던 곳 배경입니까! 하다못해 노르웨이같은 눈덮힌 산이 있는 근사한 DLC 라도 추가했어야 합니다. 이거 게임 이름을 '어쌔신 크리드 다크 에이지 오브 잉글랜드 - 왜구 바이킹의 중세 영국인 조지기- ' 로 바꿔야 합니다.
위에서 제가 붙인 부제가 '왜구 바이킹의 중세 영국인 조지기'인 건 실제 게임 스토리가 주인공 바이킹 일족이 영국에서 기생충처럼 주위 평민을 등처먹고 자라는 과정을 담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바이킹의 고향 노르웨이에서 나온 주인공 일행이 영국에서 하는 짓은 일관되게 주위를 약탈하고 힘으로 동맹을 맺어서 정착지를 안정시키는 겁니다. 위에서 명예를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는 바이킹... 풋. 약한 놈 등처먹는 건 명예롭지만 같은 도둑 등처먹는 건 불명예인 도둑의 명예 같은 겁니다. 주인공 에이보르는 자신과 일족에게 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가차없이 학살하고 빼앗고 불지르는 걸 즐겨하는 약탈 민족의 일원입니다. 심지어 같은 바이킹들 또한 약탈을 무엇보다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고 불 지르는 걸로 성욕을 느끼는 변태도 있을 정도죠. DLC 중 하나는 아예 주위 영국인 거주지를 약탈하고 불태우고 다니는 갱 컨텐츠이며, 실제 역사에서 바이킹이 한 짓거리까지 조사하면 마치 우리나라에서 왜구들이 저지른 깽판처럼 게임 이상으로 가혹해서 실제로는 인간 말종이자 구역질나는 양아치인 걸 알게 됩니다. 이게... 정의의 주인공?
다만, 에이보르는 무식하게 힘만 쎈 마초는 아니고 정착지 내부의 일을 관장할 때에는 나름 공명정대하고 논리적입니다. 미신이나 소문을 믿지 않고 증거를 토대로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려 부족원의 신뢰를 얻죠. 그래서 더더욱 이율배반적이고 이해가 안가는 모순된 캐릭터입니다. 이익에 반하면 가차없이 죽이고 자기 사람에게만 따뜻하게 구는 걸 보면 토나옵니다. 자신이 하는 짓이 뭔지 알면서 제정신으로 양아치짓 하고 있는 것이 더욱 용서 안됩니다. 역대 어크 주인공 중 가장 꼴보기 싫은 놈으로 주저없이 꼽겠습니다. (두번째는 오디세이 카산드라)
게임 컨셉에 전혀 맞지 않고 흥미롭지 않은 배경, 비호감 주인공 말고도 플레이어를 지치게 만드는 요인은 또 있습니다.
오리진과 오디세이를 해본 유저라면 초반 5 시간 정도는 예전에 비해 개선된 게임 플레이로 나름 쾌적하게 즐기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게임에 익숙해진 다음에는 게임 플레이를 가로막는 새로운 장애물이 나타납니다. 가장 짜증나는 요소로는 무의미해진 달리기입니다. 달리기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말을 타도 도시 주변에선 걷기만 강요 당하는 건 이전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서 적들은 제한없이 쏜살같이 달려와 말에 타고 있는 저를 패서 떨어뜨리니 열받습니다.
퀘스트와 퀘스트 사이의 동선도 예전과 똑같습니다. = 400 미터 격리를 철저하게 유지합니다. A 에서 퀘스트 받고 B 까지 400미터 이동해서 뚜드려 팬 다음 C 까지 400미터 이동해서 물건 주고 또 400미터 이동해서 D 에서 퀘스트 완료하는 식으로 뺑뺑이 택배돌기는 오디세이 해본 사람이라면 제 글을 보기만 해도 치를 떨고 있을 듯 합니다. 게임 신작 나오면 더 쾌적하고 빠르고 재밌게 변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요? 빨리가기 웨이포인트를 퀘스트 장소로부터 한참 멀리 떨궈두는 게임이 세상에 어딨습니까? 그게 빨리가기 포인트입니까? 게임 끄고 글을 쓰는 동안 또 열받네요. 빨리가기 포인트라면 퀘스트 받고 해결하는 NPC 바로 앞까지 바로 가도록 만들라고요!
지금까지 110 시간 동안 하면서 발할라는 게임 디자인을 왜 이렇게 개판으로 했는지 계속 궁금해 할 수 밖에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제 의구심은 점차 구체화되어 한가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유비 이놈들 싱글 게임을 모바일 게임처럼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유저가 빠르게 게임 클리어하는 걸 최대한 막게끔 이동속도를 떨구고 퀘스트 이동거리를 늘린 거죠. 다른 방법으로는 게임 난이도를 올려 공략을 늦춥니다. 지금은 생존 스킬이 대거 추가되어 쉬워졌다지만 과거 발할라 발매 초기에는 하드코어로 악명이 높았다고 하죠.
게임 난이도 올리는 건 괜찮다고 봅니다. 게임성을 조절하는 방법 중 하나니까요. 하지만 억지로 길막하면서 유저가 답답함과 불편함을 느끼는 수준으로 진행 속도를 늦춘 건 게임성을 떨어뜨리는 행위 이상으로 자해 행위입니다. 덕분에 저는 이 게임을 하면 할수록 흥미를 잃고 허무감을 느낍니다. 얼마 안 남은 메인퀘 진도 나가려고 해도 보나마나 뻔한 언덕 지형 400m 삘삘 기어간 후 내로남불 주인공이 나 너 죽인다 모두 빼앗는다 외치고 투닥투닥 싸운 후 또 400m 기어가는 반복이라 지겹습니다.
초기에는 나름 열심히 했지만 지금은 며칠에 한번씩 패드에 손 댔다가 금방 멈추고 있습니다. 이 게임 때문에 다른 일도 의욕이 떨어지는 것 같아 슬슬 포기하고 다른 게임이나 할까 생각중이네요.